정우석의 기술 해부 · 2026-10-03
백악관의 '초지능' 선언, 우리 집 AI는 왜 내 말귀도 못 알아들을까
정부와 빅테크는 '초지능'을 외치지만, 정작 소비자 2%만이 AI를 이해한다고 합니다. 이 엄청난 간극은 어디서 왔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무엇에 돈을 내게 될까요.

“AI가 답안지 초안을 싸게 대량생산해줄수록, 그중에서 정답을 고르고 최종 제출 버튼을 누르는 '판단'의 가치와 책임은 오히려 무거워진다.”
서론: 7개 들어있던 '라지 사이즈' 맥앤치즈
며칠 전 인터넷에서 본 사진 한 장에 실소했습니다. 미국인이 냉동식품 '스터퍼스'의 라지 사이즈 마카로니 앤 치즈를 샀는데, 막상 데우고 보니 면이 딱 7가닥 들어있더라는 겁니다. 포장지에 그려진 풍성한 이미지와는 딴판이었죠. '라지'라는 이름이 무색한 내용물이었습니다.
이번 주 백악관에서 열린 AI 회의 소식을 들으며 이 7가닥짜리 맥앤치즈가 떠올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프 베이조스, 일론 머스크 같은 거물들을 불러 모아놓고 AI를 '초지능(super intelligence)'으로 공식 명명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습니다. 인류를 뛰어넘는 지능의 탄생을 국가가 선포한 셈입니다. 그런데 같은 시기 나온 여론조사 결과는 초라합니다. 소비자의 단 2%만이 AI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구매할 가치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백악관의 거창한 선언과 대중의 싸늘한 현실 인식, 이 둘 사이의 간극이 마치 라지 사이즈 포장 속 7가닥 면발처럼 느껴집니다.
물론 AI는 중요합니다. 저도 매일같이 쓰고, 그 잠재력에 놀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정부와 기업이 쏘아 올리는 '초지능'이라는 거대 담론과,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AI의 실제 모습은 너무나 다릅니다. 이 간극은 왜 생기는 걸까요. 그들은 왜 자꾸 우리 손에 잡히지도 않는 '초지능' 타령을 하는 걸까요. 기술의 실체를 한 꺼풀 벗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초지능'이라는 이름표, 누구를 위한 것인가
'초지능'이라는 말 자체는 새로운 게 아닙니다. 기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오래전부터 쓰이던 용어입니다. 쉽게 말해, 인간의 지능을 모든 면에서 뛰어넘는 가상의 인공지능을 뜻합니다. 문제는 이것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 먼 미래의 개념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왜 미국 대통령은 현존하는 AI 기술에 이 이름표를 붙였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이 선언은 국민이나 소비자를 향한 메시지가 아닙니다. 이것은 지정학적, 산업적 경쟁자들을 향한 일종의 '깃발 꽂기'입니다.
- 대(對)중국 메시지: 'AI 기술 패권 경쟁에서 미국이 선두에 있다'는 선언입니다. 기술 표준과 미래 산업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과시하는 것이죠.
- 대(對)산업계 메시지: 실리콘밸리 기업들에게 '정부가 너희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함께 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호입니다. 규제보다는 진흥에 무게를 두겠다는 뜻으로도 읽힙니다.
- 대(對)자본시장 메시지: AI 산업의 '밸류에이션(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것)'을 떠받치는 역할을 합니다. 국가가 '초지능'이라는 비전을 보증함으로써, 관련 기업들에 막대한 투자가 계속 흘러 들어오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마치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스타트업이 투자자를 만나 '저희는 인류의 미래를 바꿀 혁신 플랫폼입니다'라고 거창하게 소개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실제 고객이 쓸 제품보다는, 투자자의 구미를 당기는 비전을 파는 데 집중하는 것이죠. 지금의 '초지능' 담론은 대중이 아니라 투자자와 경쟁 국가를 위한 언어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쓰는 AI 기술들은 대단한 이름표 뒤에 가려집니다. 우리가 쓰는 챗GPT 같은 LLM(Large Language Model, 쉽게 말해 사람 말을 흉내 내 문장을 만들어내는 AI)은 분명 강력하지만, 아직은 인간의 지시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기업들이 공개하는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다른 회사의 기술을 내 서비스에 연결해 쓸 수 있게 만든 통로)를 이용해 만든 수많은 AI 서비스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들을 뭉뚱그려 '초지능'이라 부르는 건, 동네 축구팀을 보고 '우리는 월드컵 우승 후보다'라고 말하는 격입니다.
데자뷔: 4세대 언어와 '코딩 없는 세상'의 추억
이런 상황을 보고 있으면 30년 전의 풍경이 떠올라 기시감이 듭니다. 제가 막 엔지니어로 일하기 시작했던 1990년대, 업계에는 'CASE(Computer-Aided Software Engineering) 도구'와 '4세대 언어(4GL)'라는 것이 큰 유행이었습니다.
당시의 구호는 지금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습니다. "이제 복잡한 코딩의 시대는 끝났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화면에 그림을 그리거나 간단한 명령어를 입력하면 원하는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이 곧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도 넘쳐났습니다. 기업들은 비싼 돈을 주고 이런 도구들을 도입했고, 경영진은 '개발자 없이도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다'는 환상에 잠시 부풀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이 도구들은 완전히 실패하지는 않았습니다. 일부 반복적인 작업이나 특정 업무용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는 꽤 유용했습니다. 하지만 '코딩 없는 세상'은 오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복잡한 로직이 들어가거나, 기존 시스템과 연동해야 하거나, 성능을 최적화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어김없이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결국 이 도구들은 프로그래머를 대체하는 대신, 프로그래머의 생산성을 약간 높여주는 '보조 도구'로 자리 잡거나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약속은 거창했지만, 현실은 초라했던 것이죠.
이 역사는 닷컴 버블, 그리고 최근의 '노코드/로코드' 유행에서도 반복됩니다. 언제나 기술은 '모든 것을 바꿀 혁명'으로 포장되지만, 실제로는 기존의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푸는 '개선'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의 AI 열풍도 이 역사적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보입니다.
표: 기술 유행의 약속과 실제 결과
| 기술 주기 | 당시의 약속 (Hype) | 실제 결과 (Reality) |
|---|---|---|
| CASE 도구 (1990년대) | '그림만 그리면 프로그램이 자동 완성됩니다. 코딩이 필요 없습니다.' | 복잡한 로직 구현에 한계, 특정 업무용으로만 쓰이거나 개발자 보조 도구로 전락했습니다. |
| 닷컴 버블 (2000년대) | '온라인에 가게만 차리면 전 세계 고객이 몰려와 돈을 법니다.' | 비즈니스 모델 없는 아이디어는 실패했고, 오프라인의 성공 법칙이 온라인에서도 중요함이 증명됐습니다. |
| 노코드/로코드 (2010년대) | '이제 개발자 없이 누구나 앱을 만들 수 있습니다.' | 간단한 앱은 가능하지만, 확장성, 유지보수, 복잡한 기능은 여전히 개발자의 영역으로 남았습니다. |
| 생성형 AI (현재) | 'AI가 모든 지적 노동을 대체할 것입니다. '초지능'이 옵니다.' | 반복 업무 자동화에 강력한 성능을 보입니다. 그러나 결과물 검증, 최종 판단, 창의적 방향 설정은 여전히 사람의 몫입니다. |
2%의 진실: 소비자는 왜 지갑을 열지 않는가
다시 '소비자의 2%만이 AI를 이해하고 구매 가치를 느낀다'는 통계로 돌아와 봅시다. 이 낮은 수치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여기서 흔히 하는 오해 두 가지를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 오해 1: "사람들이 AI의 위험성을 걱정하거나, 터미네이터 같은 영화 때문에 막연히 두려워해서 안 쓰는 것이다."
- 진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본질이 아닙니다. 대다수는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래서 이걸로 뭘 해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에 안 씁니다. 당장 내 삶에 어떤 구체적인 이득을 주는지 와닿지 않는 것이죠. 먼 미래의 로봇 반란 걱정보다, 지금 당장 쓸모가 없다는 점이 훨씬 더 큰 진입장벽입니다.
- 오해 2: "기술이 아직 부족해서 그렇다. 기술이 더 발전하면 자연스럽게 모두가 쓰게 될 것이다."
- 진실: 기술 발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아이폰이 세상을 바꾼 건, 당시 존재하던 기술들을 '집약'했기 때문이 아니라 '손안에서 인터넷을 쓰는 즐겁고 편한 경험'이라는 명확한 가치를 팔았기 때문입니다.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것이죠. AI 역시 '우리 모델은 파라미터가 몇 개고 추론 속도가 얼마'라는 기술 자랑을 넘어, 고객의 진짜 문제를 해결하는 '가치 제안'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시장에서 만나는 AI 제품들은 대부분 이 '가치 제안'이 희미합니다. 스마트폰의 AI 사진 편집 기능은 신기하지만, 없다고 해서 크게 불편하지 않습니다. AI 글쓰기 도우미는 일부 직장인에겐 유용하지만, 대다수에겐 필요 없는 기능입니다. 스마트 스피커는 여전히 간단한 명령도 잘못 알아들을 때가 많습니다. 아무리 멋진 전문가용 등산화라도 동네 슈퍼 갈 때 신기에는 거추장스럽고 불편할 뿐입니다. 지금의 많은 AI 제품들이 딱 그 꼴입니다. '초지능'이라는 거창한 이름과는 달리, 아직 우리 일상의 '결정적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코앞의 AI와 '저 너머의' AI: 우리는 무엇을 봐야 하나
이 혼란은 사실 두 종류의 AI 개발이 동시에, 하지만 다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우리는 이 둘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저 너머의 AI', 즉 프론티어 모델 개발입니다. 오픈AI나 구글, 앤트로픽 같은 소수의 거대 기업들이 수천억, 수조 원을 쏟아부으며 벌이는 경쟁입니다. 이들의 목표는 인간처럼 생각하고 추론하는 범용 인공지능(AGI), 나아가 초지능을 만드는 것입니다. 백악관이 주목하고 언론이 떠드는 AI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 경쟁은 마치 냉전 시절의 우주 경쟁과도 같습니다. 국가적 자존심과 미래 패권이 걸려 있죠.
둘째는 '코앞의 AI', 즉 제품화된 AI입니다. 우리가 스마트폰, 업무용 소프트웨어, 각종 웹사이트에서 실제로 만나는 구체적인 기능들입니다. 이메일을 자동으로 분류해주고, 사진첩에서 '강아지' 사진만 찾아주고, 긴 문서를 요약해주는 것들이죠. 이 AI들은 프론티어 모델처럼 모든 걸 잘하지는 못하지만, 특정 작업을 해결하는 데는 꽤 효율적입니다.
문제는 이 둘 사이의 간극입니다. 업계의 마케팅과 언론의 보도는 온통 '저 너머의 AI'에 쏠려 있는데, 정작 우리가 돈을 내고 쓰는 경험은 '코앞의 AI'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 괴리감이 바로 대중의 냉소와 피로감을 낳는 원인입니다.
게다가 '저 너머의 AI'를 쓰는 데는 막대한 비용이 듭니다. 최신 거대 AI 모델을 한 번 '추론(AI에 질문하고 답을 얻는 과정)'하는 데 드는 전기료와 서버 비용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흔히 쓰는 비유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택시 미터기를 켜놓고 가는 것과 맞먹는 비용이 들 수도 있습니다. 기업들이 이런 고비용 기술을 모든 소비자에게 아낌없이 제공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결국 우리가 쓰는 대부분의 AI 서비스는 비용과 성능 사이에서 타협한, '보급형' 버전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에 돈을 지불하게 될까: '판단의 값'
그렇다면 이 모든 소란 속에서, 우리는 앞으로 무엇에 가치를 두고 돈을 지불하게 될까요? 역사는 여기서도 힌트를 줍니다. CASE 도구가 프로그래머를 없애지 못했듯, AI 역시 지식 노동자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않을 겁니다. 대신, '일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입니다.
AI는 수많은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지적 노동을 자동화할 것입니다. 자료를 찾고, 초안을 쓰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코드를 짜는 일들 말입니다. 이런 작업들의 가치는 점점 떨어져, 거의 공짜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마치 계산기가 등장하면서 암산 능력이 더는 중요한 경쟁력이 아니게 된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의 가치가 올라갈까요? 역설적으로 AI가 할 수 없는 일들의 가치가 폭등할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판단의 값'이라고 부릅니다. 구체적으로는 다음 세 가지 능력입니다.
- 질문의 능력: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어떤 목표를 향해 가야 하는지를 정의하는 능력입니다. AI는 주어진 질문에 답을 할 뿐, 어떤 질문이 중요한지는 모릅니다.
- 검증의 능력: AI가 내놓은 그럴듯한 결과물이 사실인지, 쓸 만한지, 우리 상황에 맞는지, 혹시 편견이나 오류는 없는지 가려내는 능력입니다. AI는 종종 환각(Hallucination)이라 불리는, 틀린 정보를 사실처럼 말하기 때문입니다.
- 통합의 능력: AI가 생성한 여러 조각의 결과물들을 비판적으로 취사선택하고, 더 큰 맥락에 맞게 수정하고 조합하여 최종 결과물을 완성하는 능력입니다. AI는 '초안'을 잘 쓸 뿐, '최종본'을 책임지지는 못합니다.
미래의 유능한 직장인은 AI보다 글을 빨리 쓰거나 코딩을 빨리 하는 사람이 아닐 겁니다. 오히려 AI라는 유능하지만 가끔은 엉뚱한 인턴을 데리고, 정확한 지시를 내리고 결과물을 검토해 최고의 성과를 만들어내는 '프로젝트 매니저' 같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AI가 답안지 초안을 싸게 대량생산해줄수록, 그중에서 정답을 고르고 최종 제출 버튼을 누르는 '판단'의 가치와 책임은 오히려 무거워집니다.
독자가 던질 법한 질문들
Q. 그래도 AI 때문에 제 일자리가 없어질까 봐 불안합니다. 칼럼니스트님은 괜찮으신가요? A. 솔직히 저도 불안합니다. 하지만 두려워하기보다 AI를 제 '인턴'으로 삼아보려 합니다. 자료 조사를 시키고, 기사 초고를 쓰게 하고, 저는 그 결과물을 비판하고 다듬는 데 시간을 더 쓰는 식이죠. 단순 반복 작업이 줄고, 기획과 판단 같은 핵심 업무의 비중이 커질 겁니다. 목수가 자동 대패가 나왔다고 망하지는 않았습니다. 더 좋은 대패를 써서 더 좋은 가구를 만들었죠. AI를 그런 '더 좋은 연장'으로 다루는 법을 익히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Q. 정부나 기업이 '초지능' 같은 말을 쓰는 게 꼭 나쁜 건가요?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나요? A. 비전 제시는 중요합니다. 다만 '누구를 향한 비전인가'가 문제입니다. 지금의 '초지능' 담론은 대중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국가 간 경쟁이나 투자 유치를 위한 '그들만의 언어'에 가깝습니다. 이는 대중의 괴리감만 키울 수 있습니다. 마치 서민들에게 "내년부터 화성 식민지를 개척할 테니 허리띠를 졸라매시오"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와 너무 동떨어져 있죠. 대중과 소통하려면 '초지능'이 아니라 '이 AI로 당신의 월급이 어떻게 오를 수 있는지'를 보여줘야 합니다.
Q. 평범한 직장인이나 학생이 지금 AI 시대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코딩이라도 배워야 하나요? A. 코딩을 배우는 것도 좋지만, 더 중요한 건 'AI에게 일을 잘 시키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챗GPT 같은 도구를 꾸준히 써보면서, 어떻게 질문해야 더 좋은 답을 얻는지 '감'을 익히는 게 우선입니다. 내가 하는 일의 과정을 단계별로 쪼개보고, '이 부분은 AI에게 맡길 수 있겠다'고 생각해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AI를 쓰는 기술 자체보다, AI의 결과물을 판단하고 내 일에 맞게 활용하는 능력, 즉 'AI 리터러시'가 앞으로의 핵심 경쟁력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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